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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전염의 시대, 우리는 ‘사람’에 집중해야 한다


전염의 시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극심한 고독감을 안겨 주었다. 집에 머물러야 했고,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는 경계의 시선과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조금만 참고 견디면 모든 것이 곧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전염의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제는 코로나 위기를 교훈으로 삼아 나, 그리고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해 근본적이고 깊은 성찰을 해야 할 때이다. 또한 무심코 흘려보냈던 시간의 의미, 함께 한다는 것의 소중함,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도서관은 위드 코로나 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에 운영의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2020년의 출발과 함께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 라는 슬로건으로 마장도서관 [우리동네 사람책] 사업이 야심차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첫 번째 사람책인 엄태준 이천시장과의 만남 이후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대면강의를 이어갈 수 없었다.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2020년 하반기, 오랜 숙고 끝에 ‘온택트 사람책’으로 방향을 전환해 다시 시동을 걸었다. 각자의 안전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함께 읽기’는 사람책과 독자 사이의 밀도 있는 대화로 이어졌다. 진솔하지만 특별한 가치를 담은 삶의 서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명 강사들의 강연과는 결이 다른 묵직한 울림으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지금부터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도서관의 시간을 충만하게 채워주었던 ‘사람책’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살면서 문득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 봤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 삶의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서 사람책의 첫 페이지를 활짝 열었다. ‘생각과 마음이 세상을 만들어 낸다’ 고 말하는 엄태준 사람책의 소신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기회는 곧 성장으로 이어진다. 코로나 시대를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뉴노멀’을 받아들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해나가려는 태도와 인식이 필요하겠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수그러들 줄 몰랐던 가을, 마장도서관은 ‘코로나를 지우고 희망을 쓰다’라는 제목으로 희망 메시지 쓰기 행사를 진행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의 대답 중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마음대로 여행 가고 싶어요”였다. 

이군노 사람책이 들려준 ‘나 홀로, 내 멋대로 세계 여행’의 경험담은 떠날 수 없는 현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독자들은 사람책과 함께 떠난 랜선 세계여행에서 여행지의 거리와 풍경을 상상하며 즐거워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2020년 학생들의 등교일수는 며칠이나 될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에게 매일 학교에 가는 일상은 오히려 낯설고 어색한 일이 되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소년기의 변치 않는 화두는 ‘진로와 꿈’이다. 유혜영 사람책이 열정을 담아 들려준 이야기는 ‘좋아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어른이 된 후에 꿈이 모두 사라졌다고 우울해하는 성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응원의 메시지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생의 마지막 순간은 찾아온다. 우리는 코로나 감염증 사망자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을 매 순간 목도하고 있다. 죽음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생이 소멸하는 순간,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간을 가치 있게 살아내야 한다. 

박인조 사람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임종의 순간을 가정해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밝혀두는 서류)를 미리 작성해 두는 것 또한 존엄한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제도의 취지를 설명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57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죽음에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치게 했고, 깊은 상처와 통증을 남겼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다독임이다. 말, 글, 꽃으로 시를 쓰는 이춘희 사람책이 들려준, 소박하지만 진솔한 시어들은 우리의 영혼을 푸근하게 어루만져주었고, 가슴 깊은 곳까지 큰 울림으로 채워주었다. 시인의 삶이 녹아있는 ‘인생시’를 함께 읽은 독자들은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고, 긴 여운과 진한 감동으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우리가 누리던 모든 것들을 장악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 신중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마스크 뒤에 가려진 꼭 다문 입, 경계의 시선과 거리두기만으로는 더 이상 이 시간을 버텨낼 수 없다. 우울과 공포의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우리가 맞닥뜨린 전염의 시대는, 현재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바로 ‘사람’이라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다. 뚜렷하고 절실한 신호에 이제는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도록 소중한 사람과 함께,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이천시 도서관은 ‘사람 중심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핵심 가치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또한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면서 도서관의 사명과 책임을 다 할 것이다. 

아울러,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는 우리를 둘러싼 소중한 사람들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차분하고 경건하게 보내기를 바란다.